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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일지] 2020년 5월 27일
    가정예배 일지 2020. 5. 27. 12:04

    2020년 5월 27일 가정예배 일지 



     

    “말씀을 주시는 이유”

    에스겔 2: 3-10절 말씀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대로 

    보내시는 대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의 모습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공통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 제자 삼으라” 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지상명령.

     

    이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백성에게로 보내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만날 백성들이 

    어떠한 자들인지

    설명해주시는데,

     

    오늘 본문 4-5절 그리고 7 절 말씀에,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그들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뻔뻔한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평가하고 계신 것이죠.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뻔뻔하다고 하실까요? 

     

    이후에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는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면서

    반복적으로 언급하시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패역한” 입니다. 

     

    6절 말씀에 

    “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7절 말씀에도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패역한 족속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패역함이 무엇입니까? 

     

    영어 성경에는 이 패역이라는 단어가

    rebellious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반항적인” 혹은 “반역하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원어에서 이 단어는

    “배신하는”, “배반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사역의 대상이 되는

    이 민족은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베풀어주신 은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던 민족이

    바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하셨음을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었음을 알고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뻔뻔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의 사역이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역의 대상이 되는 이 백성은 

    가시와 찔레, 전갈 같은 존재들입니다. 

     

    잘못 다루면 

    다루는 사람을 상처입힐 수 있는

    존재들이란 뜻입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폴 워셔 목사님께서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하셨습니다. 

     

    21세기 10대 명설교 중 하나로 뽑히는

    “현대교회를 향한 10가지 기소장”에서

     

    “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물과 같은 적개심을 들어내던지

    회심했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극과 극이지 않습니까? 

     

    분노로 가득 차서 동물과 같은 적개심을

    들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 3장 3-6 절 말씀에,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40일 뒤에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라고 요나가 외치니까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금식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는데

    동물과 같은 적개심을 들어내는 자들입니다. 

     

    사도행전 7:54-58 절 말씀에,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공회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짐승같이 

    그들의 귀를 막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던지

    아니면 귀를 막고 짐승 같은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어쩌면 후자와 같은 반응 보일지 모르는 

    에스겔을 하나님께서는 보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복음을 받아 드릴지 드리지 않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를 보내신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받아들이는 것에

    말씀은 조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하는 것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5절과 7절 말씀에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7절 말씀에도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내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어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뭐하라고 명령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믿게 만들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만 하십니다. 

     

    전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그냥 

    에스겔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10 절 말씀에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보내시지 않습니다. 

     

    무엇을 에스겔에게 먹으라 하십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보내시면서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으라고 하셨을까?” 

     

    아니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말씀을 먹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에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먹으라 하시는 것은

    하나님 그 자신을 주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패역한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보내시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라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살펴볼 내용입니다. 



    이유는  3가지입니다. 

     

    오늘 이 3가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가? 



    첫째,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먹으라 하시기 전 

    에스겔이 앞으로 

    마주할 여러 문제들을 

    먼저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

    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두렵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특히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때

    그 두려움은 배가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혹은

    나와 10년을 함께한 친구에게.

     

    또는 나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나 이미 

    결혼을 하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배우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가

    사이가 멀어지면 어떡하지?”

     

    “괜히 교회 얘기 꺼냈다가

    싸움만 나는 거 아닐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복음을 전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15년 동안 섬기던 교회에

    계시던 한 전도사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는데요,

    그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 7명이 있었어.

    정말 다 좋았는데

    진짜 다 좋았는데

    딱 한 가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어.

    친구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오랜 고민 끝에,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

    나는 용기를 내서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단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지금까지도 그 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7명 모두 나를 떠나고 

    이제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방법 조차 없단다.

    이후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친구 하나 없이 살게 되었어”

     

    “7 명 모두가 회심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어”

    라고 스토리가 끝난다면

    얼마나 훈훈하고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다 떠나갔대요. 

     

     우리는 이게 두려운 겁니다. 

     

    그저 전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두려운 이유는

    그 전하는 것 때문에

    내가 찔릴까 봐

    상처 받을까 봐

    관계가 악화될까 봐 

    우리는 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 충만하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하나님으로 우리가 무장되면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

    기쁜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는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두려움 없이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번째는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 패역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패역이란

    ‘반역’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보내시면서

    에스겔이 패역한 그들과

    동일한 길을 걷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먹이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범하는 심각한 잘못이 있는데

    합리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셨으니까 나는 전했어” 

     

    이게 옳습니까? 

     

    한번 전했으니까 땡! 

    하는 게 옳냐는 겁니다. 

     

    이건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마음의 부담을 느끼기는 싫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는 해야겠고.

     

    우리에게는 믿지 않는 자들을

    회심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어요. 

     

    그건 성령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던지

    열심을 다해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사명이에요.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두려워서 

    혹은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면 

    패역한 백성이나

    전하는 우리나

    다를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데

    그게 하나님 앞에 패역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

    그게 패역 아닙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받은 사명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온전히 잘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패역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책하게 되고요, 

    마음에 죄책감이 생깁니다. 

     

    이런 합리화로 놓친 

    하나님의 양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얼굴들이 

    여럿인데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영혼들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폴 워셔 목사님의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폴 워셔 목사님이

    신학생이었던 시절,

    사역자들에게 양복을 50% 할인해서 판매하는 

    양복점에 가셨다고 합니다. 

     

    거기서 양복을 고르고 있는데 

    한 나이 드신 흑인 어르신께서 

    멀리서 폴 워셔 목사님을 지켜보고 있다가

    따라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그 흑인 어르신께서 폴 워셔 목사님께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 자네, 사역자 구만! 신학생인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걸세!”

     

    “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폴 워셔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나는 저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서

    20년 넘게 사역한 목사라네.

    지금은 교회를 이전하고

    다른 목사님이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네.

    우리 교회는 아주 뜨거운 교회였어. 

    매주 회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들이 

    넘쳐나는 교회였지.”

     

    “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폴 워셔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특별한 건 없었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못과 망치로

    성도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네.

    그들이 얼마나 죄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때렸다네.

    결국에는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시고

    회심시키시더군!”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하는 것을

    자기 합리화해서

    그냥 내 마음이 편하자고

    대충 전한다면, 

    두리뭉실하게 전한다면,

    하나님 앞에 패역하는 것과 

    다를 것 없습니다. 

     

    에스겔이 만약 백성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전하고 

    “그래도 나는 전했어”

    라고 한다면

    그도 하나님 앞에 패역한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패역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그리고 끝까지

    담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선지자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것을 자기의 생각과 해석대로

    전했다면

    그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해석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지

    복음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그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하잖아요? 

    그럼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아는 것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충분한데, 

    우리는 자신이 없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관점이 더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건 불필요한 거 같아”

    하고 말씀을 빼버리고

    혹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해서

    전달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3 절 말씀에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후서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베드로의 경고와 주의의 말씀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범하는 범죄들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의견을 투영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틀림이 없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개인의 생각이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실수를 막으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면,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잘 붙잡아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패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잘 붙잡아서

    하나님 앞에서

    주신 사역을 감당할 때에

     

    성령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두려움 없이

    오류 없이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복음 전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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