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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2. 하나님의 주권_ 하나님과 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2)
    Learn from the book/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_ R.C. 스프로울 2020. 5. 2. 17:10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과 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2)

     

    이번 포스팅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악의 관계를 다뤄 볼 것이다. 

     

    사실상 모든 기독교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문제는

    바로 악이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을 이 땅에 들어오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의 주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그들에게 

    주셨고,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말을 듣는 쪽과

    뱀의 말을 들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 쪽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최초의 인류는 후자를 택했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두고

    자유의지에 의한 결과라고 얘기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가는 것은

    큰 오류를 낳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아담과 하와를 현재의 인류와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하지만,

    처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처음 하나님께서 그분의 현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을 때,

    그들은 죄가 없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선택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욕망보다

    죄에 대한 욕망이 더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죄에 대한 욕망이 대체 어떻게 

    인류에게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스프로울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하여 

    아주 솔직한 답변을 내놓는다. 

     

    "나도 모른다" 

    (글쓴이는 한참 심각하게 이 부분을 읽다가

    나도 모른다는 너무나 솔직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정리해보자.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은 무언가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존재하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만약 그런일이 벌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주권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자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을

    예정하셨고,

    예정하셨다는 것은

    죄가 들어올 사실도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의미가 된다. 

     

    오해하면 안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도록 강요하셨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죄가 이 땅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셨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구별해야 한다.

     

    스프로울 교수는

    이 부분을 이렇게 강조했다. 

     

    "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신 사실은 선하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신 그 악은 여전히 악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죄에 노출 되고

    악한 죄를 범하도록 허용하신 것도 

    선한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따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애초에 왜 세상을 창조했는가? 

    라고 말이다. 

     

    악을 용납하고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을 허용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비로운 하나님일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글쓴이도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애초에 왜 죄를 이 땅에 허용해서

    그 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을 받는 사람이

    생기게 하셨는가.

     

    하지만 스프로울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해

    이때까지 글쓴이가 가지고 있던

    사고를 전환하게 만드는 

    답을 내놓는다.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를 창조하지 않기로 하실 수도 있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나님의 주권과 악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결론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2장 1편을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내용만 다루었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이 주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이 사랑이 부족한 분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해석으로 정의 지어지실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제는

    저번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선택과 유기와도 연결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일부만 선택하시고,

    다른 이들은 유기하시는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씀하는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서 9장 13~21절 말씀에, 

     

    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빨간색으로 표시해놓은 부분을 잘 읽어 보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 실 자를 긍휼히 여기신단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하실 자를

    완악하게 하신단다.

     

    그게 우리의 하나님인데, 

    우리가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사도바울은

    토기장이의 비유로 

    한번 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모든 지음 받은 것은, 

    지은 자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하게 쓸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으로

    만들고 사용하실 권한이 있으시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악을 허용하신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과 모순된다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주권자 이시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께는 그가 만드신 모든 세계를

    그의 원대로 사용하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시다. 

     

    예정론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범해서는 안 되는 오류,

    사고의 전환은 바로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그분의 주권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리해보자.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분의 모든 행하시는 일들은 선하다.

    그의 계획은 선하시다. 

     

    그렇다는 것은,

    악을 이 땅에 허용하신 그분의 예정도

    선하시다는 것이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우리 입장에서 이것이 억울하다고 느껴진다고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것은

    죄임을 명심하자. 

     

     

     

    아직 2장을 다 끝내지 못했다. 

    (다루어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

     

    다음 포스팅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될 것이다.

     

    예정론을 논하면서

    우리가 빠트릴 수 없는 주제는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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